역사이야기

백제와 고구려를 서울에서 만난다

신문기자 2010. 4. 25. 16:36
백제와 고구려를 서울에서 만난다

동산인가? 토성인가? 몽촌 나와라, 오버(OVER)!

올림픽 공원 내 그 옛날 백제의 도읍이었던 몽촌토성을 찾았다. 이곳에 오면 유적과 유물을 통해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타임머신을 타는 기분이다. 

한강 유역은 군사·전략적으로 중요했다. 고구려에게는 남방 진출의 근거지였고, 신라에게는 중국과 교류할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했다. 토성은 낮은 구릉에 쌓인 산성인데, 성안에 곰말(꿈마을이란 뜻의 고어), 몽촌이라는 마을이 있어서 지금의 이름이 전래된 것이다. 높이 6~7m, 전체 길이가 약 2.3km다.

사적 제297호인 몽촌토성은 백제가 고구려의 침략을 막기 위해 한강 유역에 쌓은 유일한 토성이며, 백제의 전기 유적으로 역사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토성은 3세기에서 5세기까지 축조된 것으로 하남 위례성의 주성으로 추정된다. 근처에는 소나무 군락지가 자리하고 있어 얕은 동산 같은 토성과 함께 역사와 문화를 배운다. 북쪽의 한강과 남쪽의 남한산성이 있고 구릉과 평야가 펼쳐진 지형이다.

움집터에는 저장구덩이 등 백제의 전형적인 육각형 모양의 움집이 있는데, 북동쪽 모서리에는 온돌 모양의 화덕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다. 마을은 대개 평야 근처의 낮은 구릉지대에 조성되었고 주위는 목책과 같은 방어시설을 만들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구려 군사를 막기 위해 한강물을 이용하여 방어선을 만들기도 하였고 판축기법을 이용한 산등성이를 흙으로 매워 높은 성을 쌓았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추운 아침에 단체 체험학습을 나온 학생들이 의외로 많았다. 그들은 재미있는 역사 공부도 하고 선조들의 지혜를 터득하는 좋은 기회를 가진 것이다. 곳곳에 S자형 길을 따라 넓은 구릉지대와 잘 다듬어진 토성을 사이에 두고 초지로 만들어진 광활한 들녘을 보듯 열심히 달려가 보았다. 시민들에게는 건강을 위해 2시간여 걷는 산책 코스다.

2,340m에 달하는 산책길이 완만한 언덕길과 함께 펼쳐져 있다. 맑은 공기, 시원한 바람, 푸른 하늘을 벗삼아 마냥 걷다가 벤치에서 쉬기도 하고, 오고 가는 사람을 만나면 서로가 눈인사를 한다. 자전거 동호회에서는 수십명씩 무리지어 페달을 열심히 밟으며 상쾌하게 달린다. 일찍 만개한 벚꽃들이 바람에 하늘거리며 춤을 추고 모두가 즐거운 표정들이다. 언덕을 오르는 숨찬 어르신들의 모습에서는 건강미를 느낀다. 돌다리를 건너서 흐르는 성내천을 따라 못가에 사뿐이 앉은 학의 모습을 보며 녹색 성장의 미래를 꿈꾼다. 여성가족재단(www.seoul.women.or.kr)에서 운영하는 역사문화탐방 (4월 24일 10:00-12:00)에 참여해 설명을 들으며 이곳을 돌아본다면 더욱 좋을 것 같다.

성내동에서 온 이종우 씨는 역사 박물관을 보고 고대 조상들이 쓰던 유물, 특히 토기와 뼈갑옷, 돌무덤, 토성 목책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조상들의 슬기에 후손으로 자긍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자양동에서 온 양주현 씨는 움집터의 저장구덩이, 화덕 시설이 발굴 당시 모습 그대로 재현돼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삶의 터전을 원형 그대로 보존한 유물과 유적을 소개하는 타임머신을 타고 하루 여행을 한 느낌으로 취재를 마친다. 올림픽 공원 평화의 문 근처에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성화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 몽촌토성 안내

- 관람시간: 3월~10월 09:00-21:00, 토ㆍ일ㆍ공휴일 09:00-18:00,
                월요일 휴관
- 관람료: 무료
- 교통편: 지하철 5호선 올림픽공원역 3번 출구, 3412, 3413번 버스
              8호선 몽촌토성역(평화의 문) 1번 출구, 3412, 3413번 버스
              2호선 성내역, 3312, 3411, 3412, 3413번 버스


시민기자/이종룡 
leebell1234@paran.com 

 
 

평강공주의 남편, 온달장군이 전사했던 곳

남한 땅에 남아 있는 고구려의 흔적은 드물다. 고구려 활동무대가 북한과 만주지역인 까닭이다. 하지만 등잔 밑이 어둡다고 서울의 한복판 아차산에 고구려 흔적이 산재해 있다. 광진구와 구리시에 걸쳐 있는 아차산과 아차산성 이야기다.

그 옛날 한성은 삼국시대 백제 500년의 서울이었다. 그러나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만주까지 거의 정벌하고 강해진 국력으로 아리수(한강)를 건너 백제를 굴복시키고, 그의 아들 장수왕은 백제의 개로왕까지 잡아와서 아차산성 밑에서 참살하니, 백제는 웅진으로 도읍을 옮기게 된다. 한성의 한강까지 차지한 고구려는 이를 지키기 위하여 아차산 일대에 수많은 보루(작은 성)을 쌓았는데  바로 사적 제 455호인 아차산 보루군이다.

많은 시민이 시내 한복판이고 교통도 편리하여 적당한 트래킹코스로 아차산(287m)을 꼽는다. 지하철 5호선을 타고 광나루역 1번 출구를 나와 광진중학교, 광진초등학교 옆길을 따라 올라가면 생태공원을 지나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아담한 동상을 만나게 된다. 아차산성의 주인이 신라로 넘어간 590년, 고구려 평원왕의 사위이자 평강공주의 남편이었던 온달장군이 성을 수복하고자 싸우다 이곳에서 전사한다. 비보를 들은 평강공주는 한 걸음에 평양에서 내려와 움직이지 않는 온달장군의 관을 어루만지면서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의 뜻입니다. 사랑하는 제가 왔거늘 함께 돌아가십시다"라고 말하자 그때서야 관이 움직였다는 일화가 전한다.

동상을 뒤로 하고 크지 않은 아차산 고구려역사문화원을 간단히 둘러보고 산행을 시작한다. 넓은 아스팔트길로 올라가지 말고 입구를 좀 지나 바닥이 흙 계단인 산길을 약 20여 분 올라가면 길 옆 우측에 아차산성이 나타난다. 아단성, 정한성, 광장성이라고도 불리는 아차산성은 사적 제234호로, 산 능선의 윗 부분 약 1km를 돌아가면서 돌로 쌓은 테뫼식(산의 정상을 중심으로 산의 7ㆍ8부 능선을 따라 둘러싼 성) 산성이다.

산성을 여유 있게 보고 약 15분 정도 정상 쪽으로 올라가면 왼쪽에 새로 아담하고 깨끗하게 지은 고구려정이 나온다. 고구려정을 뒤로 하고 또 오르면 서울의 우수경관 조망 명소인 해맞이 광장이 있고, 이 곳 전망대에서는 동쪽에서 흘러온 한강이 올림픽대교와 잠실대교 밑으로 유유히 흐르는 모습이 볼 만하다. 넓고 탁 트인 한강유역을 백제가 도읍지로 정하고 500여 년간의 성시를 이루었음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 더 오르면 제1보루가 나타난다. 보루는 적의 침공을 저지하면서 봉화대를 이용하여 상부에 연락을 취하는 곳으로 요즘의 군 초소와 같은 곳이다. 1998년부터 지금까지 순차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아차산 제4보루, 시루봉보루, 홍련봉보루, 용마산 제2보루들의 발굴 결과, 모두 고구려에 의해 축조된 성곽임이 확인되었다. 성의 내부에는 온돌유구가 있는 건물지와 물을 담이두는 저수시설 그리고 배수 시설이 나타나고 있다. 철재류는 무기류, 농기구류, 마구류들이 출토되었다. 아차산 일대의 보루군은 남한땅에서 처음 찾아 낸 고구려의 군사시설이다.

아차산 제4보루에서 한 시간쯤 올라가면 이 능선에서 제일 높은 용마산(348m) 정상에 오르게 된다. 근처의 보루 위치를 살피고 여기서 북쪽으로 한 시간 정도 소요되는 망우산으로 내려가는 길이 저 멀리 보이고, 용마산 정상에서 지금까지 올라온 아차산 일대를 살펴보면 제법 먼 거리다. 올라와서 산성과 여러 개의 보루, 고구려정을 머리에 그려보니 많은 역사를 공부했던 하루였다. 한강유역에서의 삼국시대 일대기가 머리를 스친다.


시민기자/최수학 
csooh7891@v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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