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의만남

매혹적인 차가움 <눈의 여왕>

신문기자 2009. 3. 27. 00:41

   매혹적인 차가움 <눈의 여왕>

---------------------눈의 여왕/한스 크리스티안데르센/P.J 린치 작가정신

어릴 때 읽은 <눈의 여왕>의 기억은 눈바람 휘몰아 치는 얼음성에 그윽한 웃음을 뿌리던 차갑고 고독한 여왕의 이미지 뿐이다. 아이들이 등장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겨울이 찾아온 요즘, 텔레비젼 드라마 덕분에 입에 오르내리게 되면서 그 매혹의 그림자를 다시 만져보고 싶어졌다. 어쩌면 드라마가 노린것이 바로 그것인지도 모르지만.
도서관 책꽂이에서 찾아 우리반 아이들에게도 읽어주려 할 때!! 녀석들도 금세 책으로 시선을 옮겼다. 대중적 관심은 확실히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아직 책을 찾아 읽고픈 생각까지는 미치지 못했던 아이들 마음을 탁 건드려 주었으니. 앞부분만 읽어준 후에 교실에 두었더니 너두나두 관심을 갖고 읽는다.

이야기는 아주 착한 두 아이 게르다와 케이로부터 시작한다. 낯설다. 원래 이야기가 이렇게 시작되었던가. 눈의 여왕 이미지만 머리속에 남아있는 내게 아주 평범하게만 보이는 두 아이의 등장은 잠시 혼란에 빠지게 했다. 이미지의 기억은 이렇게 강하고 오래가나 보다. 때로는 긍정적으로 때로는 부정적으로....그 착한 케이의 눈에 박힌 얼음 한 조각은 이야기를 갑자기 바꾸어 버린다.


먼지 알갱이보다 작은 조각이 어떤 사람의 눈에 들어가면, 그 사람은 그 순간부터 뒤틀려 보이는 거울 조각을 통해 무엇이든 가장 나쁜 면만을 보게 되었다.....심장에 거울 조각이 박히면 정말이지 끔찍했다. 심장이 얼음처럼 차갑게 꽁꽁 얼어붙어버렸다. 큰 조각은 유리창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또 어떤 조각은 안경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뭐든지 있는 그대로 똑바로 보지 못하게 했으므로 이 안경을 쓴 사람에게는 끔찍한 일이었다.


안데르센이 말하고자 하는 악의 근원이다. 오늘 나의 마음속에 박힌 냉정함을 비유하고 있다. 유리창과 안경은 우리 삶과 아주 가깝다.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서는 삶의 은유를 담고 있음에 문학적 깊이를 더욱 느끼게 한다.


카이가 눈의 여왕과 처음 만나는 장면....


눈부시게 반짝이는 얼음으로 만들어진 여인은 매력적이고 아름다웠지만 왠지 모르게 두려웠다. 그 여인의 눈동자는 반짝이는 별처럼 빛났지만, 그 눈동자에서는 평화도 안식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여인은 카이가 서 있는 창 쪽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흔들었다.


눈썰매를 타고 달려간 그 어느 곳에선가 만나는 눈의 여왕과 만남....


눈의 여왕이 카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물었다. 그 입맞춤은 얼음보다 더 차가웠으며, 얼음덩이나 마찬가지인 카이의 심장에 곧바로 와닿았다.


카이는 이제 눈의 여왕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두번째 입맞춤으로 게르다와 할머니, 식구들에 생각을 몽땅 잊었다. 그리고 눈의 여왕은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으며 두렵지도 않았다. 이러한 매혹에 책을 읽는 모두가 함께 당하고 만다. 눈의 여왕과 함께 밤에는 숲과 호수와 바다와 육지 위를 날아다니고 밤에는 눈의 발치에서 함께 잠을 잔다.

눈의 여왕에서 색다른 재미 하나는 왕자가 공주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소녀인 게르다가 남자 친구인 카이를 찾으러 모험을 떠나는 것이다. 눈의 여왕에 대적해서 착했던 친구 카이를 찾으러 게르다는 산을 넘고 강을 건넌다. 재미있게도 여성이 주체적인 대결자로 등장하면서도, 그 해결점도 찾아낸다. 게르다가 넘게 되는 세번의 만남에서도 그렇다. 머리를 빗겨주며 카이에 대한 생각을 잊게 해주던 할머니,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공주님, 의리가 넘치던 산적의 딸, 라프족 할머니와 핀족 아줌마까지....모두 여자다. 정말 재미있지 않은가.



눈의 여왕의 성은 바람에서 날려 쌓인 눈으로 되어 있었고, 창문과 문은 살을 에는 듯한 바람으로 되어 있었다. 백개가 넘는 방은 모두 바람이 데리고 온 눈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것 같았다. 방은 하나같이 선명한 오로라 빛이 비치고 있었고, 휑뎅그레했으며 얼음처럼 차가웠고 반짝거렸다.

눈의 여왕이 살고 있는 성에 대한 묘사가 아름답다. 그림도 역시 아름답다. 작가의 묘사는 화가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러나 그안에는 추위에 떨며 무료한 시간에 퍼즐을 맞추는 카이의 모습이 있다. 고독한 눈의 여왕과 함께. 게르다의 신념은 결국 카이를 구한다. 눈물 속에 깨진 거울조각이 씻겨내려간다. 안타깝게도 눈의 여왕이 어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아마도 기억하기로 어린시절 <눈의 여왕>을 읽고난 느낌도 그랬던것 같다. 눈의 여왕이 아주 나쁜 악의 화신으로 느껴지지도 않았기에 결말부분에서는 어떤 해결이 일어날듯 싶었다. 그러나 눈의 여왕이 없는 성에서 조용히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두 아이의 모습은 어쩐지 아쉽다. 뒷 이야기 꾸미기를 꼭 해봐야 할 듯한. 그 미진한 느낌이 어릴 때와 똑같다.

성경을 읽고,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천국에 간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철저히 기독교적인 관점 이야기다. 그런데 오히려 눈의 여왕에 매혹되는 것은 왜 그럴까. 아마도 우리 눈에 박혀있는 파편들이 아직 빠지지 않았기 때문일까.

생각해보면 어릴 때 읽던 다른 동화들과 확연하게 달랐던 안데르센의 동화 느낌이 이제야 잡힌다. 밝고 건강하지 않고, 연민과 비탄, 갈등과 고통을 느끼게 하는 동화들이다. 그래서 읽으며 마음이 불편했고 읽다가 접기도 하지 않았던가. 인어공주, 엄지공주, 미운 오리새끼, 성냥팔이소녀...빨간구두...그랬다.

그 때 간직한 이미지를 이제 다시 기억하고 싶다. 그림이 아름다운 그림책으로, 애니메이션으로 보면 더 풍부한 기억으로 남는다. 어린시절 텔레비젼에서 보았던 애니메이션이 다시 보고 싶다. 눈의 여왕이 사는 라플란타를 꿈꾸며...



또 다른 눈의 여왕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