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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안’의 풍경을 보다

신문기자 2010. 7. 13. 17:14

숨겨진 ‘안’의 풍경을 보다
변산반도국립공원 내변산 지구

 “오늘도 역시 불쾌지수가 높겠습니다.”

 일기예보 기상캐스터가 알리는 날씨가 며칠 째 같다. 온도도 높고 습도도 높다. 온통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범벅된 도시 또한 불쾌지수에 한몫 한다. 이럴 땐 깊은 숲이다. 시원한 얼음물과 김밥을 베낭에 넣고 길을 나선다. 서해 바다를 향해 봉긋하게 나와 있는 변산반도. 바다를 접하지만 그 안에 전혀 다른 모습을 숨겨두고 있는 곳. 그 깊은 반도의 속살 안에서 걷고 또 걸을 작정이다. 변산반도 안 쪽 내륙의 산을 일컫는 이름. 아름다운 바위 봉우리와 암벽을 품고 있는 내변산. 그곳으로 간다.

 

 첩첩산중, 변산의 내륙

 부안 그리고 변산의 이미지는 습하고 질척한 바다였다. 해안도로를 달리고, 채석강의 노을을 보고, 조개구이를 먹거나 곰소에 들러 젓갈을 사가곤 했던 곳. 희뿌연 연무가 사람을 삼키곤 했던 곳.

 그러나 지금 내가 보고 있는 풍경은 다르다.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변산반도의 이면. 줄포 IC에서 빠져나와 내변산으로 가는 길. 낮은 밭과 논을 따라 푸른 것들이 제법 몸집을 불려 제자리를 잡아가는가 싶더니 이내 사위는 산. 새하얀 바위 봉우리와 암벽을 품은 산들이 주위에 도열했다. 길도 어느새 산으로 구불 구불 거리며 올라간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잠시 헷갈린다. 스마트폰을 꺼내 구글지도를 작동시켜본다. GPS가 잡아낸 나의 위치는 변산반도 한 가운데. 현재 위치를 알리는 점은 온통 푸른 산들 한 가운데 박혀있다. 산줄기들은 바다를 향해 내달린다.

 변산반도 국립공원의 내륙은 정말 첩첩산중이다. 그 중 제일 높은 봉우리는 의상봉. 해발 509m다. 의상봉은 쌍선봉(459m), 관음봉(433m) 등 400m 이상 되는 준봉들을 겹겹이 거느린다.

 

 나무와 계곡, 저수지를 끼고 걷는 길

 내변산탐방지원센터를 출발점으로 삼았다.

 “가벼운 트레킹 코스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일부 구간 경사가 있지만 힘들 정도는 아닙니다. 가는 길이 예쁘니까 직소폭포 지나 재백이고개까지 갖다 오시면 얼추 맞을 것 같은데요.”

 탐방지원센터 관계자가 일러준 대로 코스를 잡는다. 얼추 계산해 보니 왕복 7.4㎞. 뜨거운 태양을 피해 숲으로 들어간다. 터벅터벅 걷는 소리가 나쁘지 않다. 하얀 길이 가지런히 숲으로 휘어져 돌아간다. 하늘은 뚫렸다 막혔다를 반복한다. 길의 모양이 다채롭다. 머리에 인 것이 그늘이었다가 구름이었다가 한다. 저 멀리 하얀 바위 봉우리가 드러났다 숨었다 한다. 하얗게 흐드러진 풀꽃들이 선물처럼 안긴다.

 ‘실상사지’라는 절터를 만난다. 실상사라는 절이 있다. 원래 실상사는 689년(신문왕 9)에 초의선사(草衣禪師)가 창건하였고, 조선시대 양녕대군(讓寧大君)이 중창하였다고 전해진다. 지금의 실상사는 새로 지어진 절이다. 원래의 실상사는 1950년 6·25전쟁 때 사찰과 함께 전부 소실되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숲길이다. 깊은 초록이다. 땀방울이 연신 흘러내리지만 쾌하다. 계곡을 끼고 걷는 길, 땀이 나면 손을 담근다. 땀이 나면 바람이 분다. 이곳에서 불쾌지수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곧 만나게 될 직소폭포까지 계곡을 끼고 가는 길이다. 계곡은 소와 선녀탕과 폭포 등 9개의 비경을 만들고 간다고 해서 ‘봉래구곡’이다. 반도가 숨겨놓은 것들이 많다.

 가파른 길을 올라 채니 숨이 턱 막힌다. 눈 앞에 펼쳐진 거대한 저수지. ‘직소보’다. 직소폭포에서 내린 물들이 이곳에 모여있다. 산상의 호수를 옆에 두고 걷는 길. 저수지 맞은편으로 펼쳐지는 초록의 산.

 걷고 오르고 걷다 보니 다 큰 남자 어른들이 내는 것이 분명한 ‘와와’하는 함성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폭포가 코 앞이지 싶다. 예상대로다. 시원스럽게 수직으로 낙하하는 물줄기. 닿는 길이 없어 멀리 전망해야만 하지만 탄성을 내기엔 충분하다.

 직소폭포를 앞에 두고 간단히 늦은 점심을 먹는다. 재백이 고개까지 1.5㎞.

 물은 물러가고 이젠 나무들을 옆에 두고 걷는다. 흘리는 땀방울 속에 온갖 불쾌한 것들이 함께 묻어 떠나간다. 가진 것은 몸 뿐. 그러므로 다리의 근육을 쓰고, 손을 휘젓고, 숨을 고르고, 목으로 넘어가는 차가운 물을 느끼고, 온갖 푸른 것들을 눈에 담는 것. 몸이 누리는 이 모든 것들이 고맙고 애틋할 뿐.

 재백이고개에 올라서니 변산반도의 실체가 보인다. 저 너머 바다. 그리고 바다를 타고 흘러다니는 희뿌연 연무들. 너무나 다른 밖과 안. 그 경계에 서 있다. 잠깐 생의 이면 같은 것을 본 것도 같다는 착각이 들 때 쯤 다시 숲 속으로 내려섰다.

 글=황해윤 기자 nabi@gjdream.com

 사진=임문철 기자 35mm@gjdream.com

여행쪽지: 내변산을 걷는 길은 여럿이다. 내변산탐방지원센터를 출발점으로 삼을 수도 있고, 남여치통제소나 원암통제소, 내소사탐방지원센터를 출발점으로 잡을 수도 있다. 

 ▲재백이고개서 본 풍경. 저 멀리 바다를 타고 흐르는 연무.
 ▲숲을 벗삼아 걷는 길.
기사제공 : 광주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