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의 눈으로 보는 선배들의 4.19혁명
-제51주년 4.19혁명
지금으로부터 51년 전 전국의 학생들이 술렁이며 심상치 않은 기운들이 흐르고 있었다.
4월19일 3.15 부정선거에 항거해 시작된 민주화 물결...
1960년 당시 한국의 상황은 이승만 정권의 권력구조와 정치의식계층, 특히 학생들의 가치관 사이에 크고 명백한 균열을 보이고 있었다. 4·19혁명은 이승만과 그의 지지세력에 대항하는 반정부세력에 의한 혁명적 시도였다. 그러나 시위학생들과 시위군중들은 그들 스스로의 조직화된 혁명의 지도력을 가지지 못했다. 조직화된 혁명의 지도력이 없는 상태에서 학생은 학원으로 돌아가고, 혁명의 결과도 당시로서는 별다른 대안 없이 유일한 정치세력인 민주당이 가져갔다. 역설적으로 이와 같은 명백한 지도력의 부재가 이승만의 조속한 사임을 가져오게 했다. 그러나 이는 이승만 정권의 붕괴 후에 '혁명'을 완성시키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4.19혁명은 부정선거라는 비민주적 행위에 대한 역사의 심판이다. 우리 헌법도 4.19 혁명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4.19가 갖는 역사적 큰 의미는 민주주의를 이 땅에 제대로 심어가는 거의 시초가 되었다는 점이다.
4.19혁명 유공자 및 유족, 기관·단체장, 학생, 일반시민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51주년 4.19혁명 기념식을 빛고을 시민문화관에서 지난 4월 19일 오전 10:00에 있었다.
특이 이번 기념식에는 광주 동성고등학교 등 5개의 고등학생들이 선배님들이 일구어낸 민주주의 4.19혁명에 대해 알아보고자 학생회 임원진이 인솔 교사와 함께 참석했다.
김용영 호남4.19혁명단체 총연합회 상임대표는 경과보고를 통하여 “호남4.19혁명은 1960년 3.15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전국최초 금남로장송데모에 이은 전국4.19학생혁명의 기폭제 역할을 하였을 뿐 아니라, 광주학생독립운동전신을 계승해 8년 5.18민주화운동을 낳게 한 한국 민주혁명의 첫 봉화였다. 광주에서 가장 먼저 시작된 4.19혁명 51주년을 맞아 계림동에 위치한 4.19혁명 기념관에도 많이 찾아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선배님들의 민주 4.19혁명 기념식을 참석한 광주 동성고등학교 2학년 최준수군은 말로만 듣던 4.19혁명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고 선배님들 피와 땀으로 일군 민주주의 혁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됐다며 감사를 표했다. 학생들을 인솔한 정수익 선생님은 4.19혁명 홍보관이 생겼으니 학생들의 단체 관람을 추진하여 4.19혁명에 대해 다시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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