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왕후를 아시는가? 그녀는 여량부원군 송현수의 딸로 단종이 즉위하자 왕비로 간택된 인물이다. 정권 다툼 속에서 단종은 1455년 왕위에서 물러나 상왕이 되고, 정순왕후는 불과 16세의 나이에 의덕왕 대비가 돼 수강궁에 머무르게 된다. 그리고 이듬해 1456년, 성삼문, 하위지, 박팽년 등이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발각돼 상왕이 된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된다.
지아비는 유배를 떠나고 그 후 궁궐에서 쫓겨난 송씨는 지금의 동대문 밖 숭인동 동망봉 기슭에 초간삼간을 짓고 한 많은 여생을 이어간다. 정업원이라 이름 붙여진 그 곳에서 함께 쫓겨난 세 명의 시녀들이 해온 동냥으로 끼니를 잇는 비참한 생활이었다. 근처 동망봉에 올라 영월을 향해 조석으로 단종이 무사하기를 빌었지만 기원과 통곡은 허사였다. 왕비의 오열과 궁핍을 안 마을 여인네들이 줄을 서서 쌀과 나물을 사립문 위로 던져 놓고 갔다. 이 소식을 들은 세조는 부녀자들이 정업원 근처에 얼씬거리는 것을 금지했다. 부녀자들은 다시 지혜를 짜냈다. 정업원 인근에 금남(禁男) 시장인 채소전을 열었다. 금남이니 감시하는 관리가 접근할 수 없었다. 이를 틈타 여인네들은 곡식과 채소를 정업원 담 너머로 던졌다. 세월이 흘러 세조는 자신과 가족에게 액운이 겹치자 참회하고 송씨의 비참한 생활을 전해 듣고 정업원 근처에 영빈전이란 아담한 집을 짓고 궁핍을 면할 넉넉한 식량을 내렸으나 정순왕후는 끝내 그것을 받지 않았다고 전한다.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뜰 때까지 60년 이상을 그녀는 홀로 이곳에 머물렀다.
정순왕후 송씨는 조선왕조 역사 속에서도 보기 드문 인물이었다. 18세의 어린 나이에 단종과 헤어져 궁 밖에서 평민처럼 살았지만 언제까지 단종만을 그리며 한 많은 세월을 산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국모로서는 유일하게 백성들 속에 살면서 당시 주변의 가난한 백성들의 삶과 직접 대면하였고, 비로소 백성의 어머니가 되었다. 처음에는 동네 여인들이 몰래 가져다주는 채소를 받아먹었지만, 나중에는 스스로 염색업을 하며 자립하고 정업원이라는 비구니 절의 주지가 되었다. 그녀는 그저 한 많은 여인이 아니라 남편 단종을 대신하여 국모로서 백성을 보듬으며 살다간 주체적인 여성이었다. 어쩌면 궁 안에서만 살다 죽은 다른 왕비들보다도 진정한 의미의 국모였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단종은 비운의 왕으로 기억되지만, 정순왕후는 우리 여성의 개척자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궁에서 살았던 3년의 세월보다 궁 밖에서 살다간 60년의 세월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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